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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ㅇ 전 시 명 : 대구포럼Ⅰ《시를 위한 놀이터》
ㅇ 전시기간 : 2021. 6 15.(화) - 9. 26.(일), 개관 91일
ㅇ 전시장소 : 대구미술관 1전시실(1,440m²), 어미홀(750㎡)
ㅇ 참여작가 : 박현기, 백남준, 이강소, 이 정, 비아 레반도프스키(독일),
               오쿠보 에이지(일본), 크베이 삼낭(캄보디아), 히와 케이(이라크 쿠르드) 총 8명
ㅇ 부문 및 작품 수 : 회화, 드로잉, 조각, 사진, 설치, 영상 등 작품 총 50여 점


 대구미술관은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년을 위한 주제 발굴 기획전 ‘대구포럼’을 신설하였다. 지속적인 학예연구를 바탕으로 대구미술관의 기획 방향을 제시할 대구포럼은 동시대 현대미술의 주요 흐름과 이슈를 창출하여 매년 국제적 수준의 전시를 관람객에게 선보인다. 배경에는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1974-1979)의 역사적 순간을 떠올리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아방가르드들의 실험정신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시를 위한 놀이터》는 그 서막을 여는 전시로, 예술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데서 기획이 시작되었다. 상이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시’라는 공통분모에 주목한 이번 전시는 절제된, 그러나 함축적인 조형 언어로 말을 거는 여덟 작가들을 시인에 비견하고자 했다. 
 《시를 위한 놀이터》는 한 편의 ‘시(예술)’를 위해 시상을 찾는 예술가의 정신적 창작 행위, 그리고 그것이 시도되고 발현되는 장소로서 미술관의 가능성에 착안한 제목이다. 하나의 은유로서 ‘시’와 ‘놀이터’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작가의 관점에서 보자면, 놀이터는 시(예술)가 탄생하기까지 무수한 사색과 상상, 치열한 도전과 실패, 때로는 무목적의 무용(無用)·무위(無爲)로 채워져 흔적이 남거나 흔적이 지워진 장소이며, 더 나아가 창작이 이뤄지는 영감의 장이다. 그리고 놀이는 예술가에게 있어 창조와 파괴, 재창조로 이어지는 창작의 바로 옆모습이다. 
 
 전시는 시의 다양한 외피를 입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시인이 언어로 이미지를 직조하듯 예술가는 물감으로, 흙으로, 영상으로, 또는 빛이나 TV로, 하나의 물성을 가진 유형의 언어를 만든다.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라 말한 백남준(1932~2006)은 중국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놀던 달을 보며 시간을 초월한 상상을 펼쳤다. 박현기(1942~2000)는 이태백의 함축적인 시구에 드러난, 대자연을 응축한 시인의 기백을 인공물에 비친 풍경에 담고자 했으며, 또한 우리의 감각과 지각이 공간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건축적 언어로 보여준다. 이강소(1943~)가 던진 흙덩이는 자유로운 붓질이 지나간 화면에 여백을 걷어낸 후의 정수(오브제)가 되었고, 어느 알 수 없는 적막한 자연 속에 외치듯이 때론 속삭이듯 불빛으로 표현된 이 정(1972~)의 언어는 현대인의 허무한 감성을 네온사인으로 말한다. 이란과 이라크 국경에 위치한 쿠르드족 출신 히와 케이(Hiwa K, 1975~)는 두 발로 걸어서 고향을 떠나는 자신의 처지를 길가메시(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에 비유해, 자신의 모국어만큼이나 소통되지 않는 언어를 어둠 속에서 시처럼 읊는다. ‘좋은 신(Good God)’은 어디 있는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에 네 개의 국경을 넘어 베를린으로 이주한 동독 출신 작가 비아 레반도프스키(Via Lewandowsky, 1963~)의 질문이다. 캄보디아 작가 크베이 삼낭(Khvay Samnang, 1982~)은 땅과 종족의 본질적인 연결고리를 원시적 풍경 속에서 섬세한 신체의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일본의 1세대 대지 미술가 오쿠보 에이지(大久保英治, 1944~)는 마음의 친구 박현기와 삼십여 년 만에 작품을 통해 조우한다. 이처럼 예술가의 삶과 기억, 미적 경험의 결정(結晶)인 작품은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시가 가장 추상적이고 함축적인 예술의 형태이나 그 단어를 낱낱이 나열하면 일상의 언어가 모여 구축된 것이듯 말이다.
 
 전시는 나아가 동시대 미술의 주요 주제인 신체와 정체성, 난민과 이주, 언어와 소통, 인간과 자연 등을 폭넓게 보여준다. 여덟 작가는 새로움을 향한 저항과 모험, 자유로운 실험정신을 기반으로, 때로는 은유와 유머를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찰을 드러낸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한 편의 시를 위한 예술가의 호흡을 함께 느끼고 상상하며 마치 하나의 시처럼 전시를 읽게 되고, 마침내 자신만의 시를 품고서 전시장을 나서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가 개관 10주년을 맞은 대구미술관이 예술 놀이터로서 시민의 곁에 자리매김했음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전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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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지하철 역에서
박현기 , 도시의 지하철 역에서, Video, 비디오 설치, 55x66cm, 1997
도시의 지하철 역에서
박현기 , 도시의 지하철 역에서, Video, 비디오 설치, 55x66cm, 1997

작가소개

박현기 Hyun Ki Park
  
박현기(1942~2000)는 국내 비디오 아트 1세대 작가로, 한국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그는 전통 속에서 현대미술의 비전을 찾기 위해 1970년대 중반에 대구에 정착해, 당시 첨단 기술인 비디오를 예술적 소재로 삼아 비디오 설치라는 독특한 형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예술과 기술의 접목을 끊임없이 탐구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작업 전반에는 자연과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한국의 전통사상, 동양적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담고 있다.   
 
90년대 이후 기술의 변화는 박현기의 후기 작업에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90년대 후반 프로젝션 작업은 일상적인 이미지와 자연의 모습을 마치 하나의 응축된 시처럼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비디오 설치 <도시의 지하철역에서>는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짧은 시 ‘지하철역에서’ 가 모티브가 되어, 지하철이라는 기계와 그 속에 잠시 존재하고 사라지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복되는 시어와 숫자로 카메라에 담았다. 사라지고 나타남은 물을 소재로 한 <물 시리즈 1,2,3>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짧은 시구에 대자연의 기운을 함축한 중국시인 이배와 두보의 시처럼, 그는 물에 비친 풍경을 단순하지만 명상적 시선으로 담아 자연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다.  
  
 
백남준 Nam June Paik 
 
세상에 없는 예술을 늘 꿈꿨던 백남준(1932~2006)은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끊임없이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왔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이며 아방가르드 음악가, 행위예술가, 작곡가, 사상가, 그리고 괴짜라는 수식어은 예술가로서 백남준의 파란만장한 삶을 말해준다.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 
암흑 속에서 인류가 본 최초의 빛이 달이라면, 텔레비전은 인류 문명의 상징이다. 옛 사람들은 달을 보며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냈고, 현대에는 텔레비전이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백남준에게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달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텔레비전과 같았다.
〈달에 사는 토끼〉는 텔레비전 수상기로 예술적 상상을 펼친 그의 작품 가운데 하나로, 보름달이 떠있는 TV모니터와 그 광경을 바라보는 토끼 나무 조각으로 구성된다. 불교의 전설과 신화에 등장하는, 달나라 월계수 아래에서 방아를 찧고 있다는 전설의 옥토끼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나와 텔레비전 시청자가 되어 달을 본다. 백남준은 그 속에서 놀던 이태백도 만났을 것이다. 전시는 텔레비전을 소재로 한 동판화 6점과 함께 그의 말년 드로잉 10점을 선보인다.
 
 
이강소 Kang So Lee
 
 이강소는 한국 현대미술의 실험정신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1973년 명동화랑 첫 개인전에 주막을 차려 막걸리를 팔고, 1975년 파리 청년비엔날레에서 살아있는 닭을 전시장에 풀었다. 그리고 그가 주축이 된 1970년대 실험적 미술운동인 ‘신체제’, ‘AG’, ‘대구현대미술제’는 한국 현대미술사를 일군 동력이 되었다. 새로운 미술을 열망하고 기존의 관습에 저항의 목소리를 표출하고자 했던 실험정신은 특히 《대구현대미술제》 1974-1979 구체적으로 가시화되었는데, 그 중심에 이강소가 있었다. 대구시와 강정 모래사장을 들썩이던 젊은 이강소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실험을 멈추지 않는다.    
 
 이번 전시는 그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이강소의 세라믹 조각 12점을 포함해 대형 브로즈 설치와 회화 두 점을 선보인다. 묘사하는 대신 즉흥적으로 툭 던져놓은 듯한 그의 작업은 리듬감과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강소는 80년대부터 서예를 이루고 있는 구조에 이끌려 이를 작업에 구체화하고자 했는데, 신체의 움직임과 필력, 재료의 상태와 이를 둘러싼 총체적 환경이 모여 비로서 작품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연으로 나타난 현상과 단순한 획이 불러일으키는 순간순간의 미묘한 결과이다.  
 문학에서 깊은 진리를 간결하게 표현한 말을 아포리즘이라 하는데, 이강소의 캔버스는 자유로움과 순수함이 남은 회화적 아포리즘이며, 그 행간조차 비워낸 조각은 흙의 본성 자체가 되었다. 오랜 관록이 묻은 작업에는 어린 아이와 같은 기교 없는 자연스러움이 담겨있다. 
 
이정 Jung Lee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탐구하는 이정(b. 1972)은 사진이란 매체를 보다 회화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초기 작업은 영국 유학시절 경험한 정체성과 문화위계와 같은 이방인의 시선과 고민을 담고 있으며, 그때부터 언어는 친밀함과 한계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작업의 주요요소로 보인다. 
 
 그의 사진은 일상의 흔한 표현들과 문학적인 언어로 현대인의 감성을 드러낸다. 반면에 자연 풍경과 인공불빛의 대립적인 구도는 감정의 역설을 비유하는 듯하다. 가령 ‘소리 없는 아우성’, ‘외로운 황홀한 심사’, 혹은 ‘찬란한 슬픔의 봄’과 같은 표현이 그의 사진에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는 세익스피어의 소네트, 퀸의 노래, 한국 현대시 등 다양한 출처에서 텍스트를 차용하고, 여기 상상력과 감성이 만나 어우러질 때 본격적인 작업을 이어간다. 촬영장소, 계절, 날씨, 대기 등 총체적인 환경을 고려하여 마침내 현장에서 한 장의 사진이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장소를 가늠할 수 없는, 황량한 풍경 속 설치된 그의 네온언어는 마치 자연처럼, 격렬했다가 어느 순간 잠잠해지는 변화무쌍한 인간의 내면과 감성을 드러낸다.  
 
 
비아 레반도프스키 Via Lewandowsky
 
비아 레반도프스키(Via Lewandowsky, 1963~)는 구동독 드레스덴 출신으로,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동독을 떠나 서베를린으로 이주했다. 80년대 동독 미술의 권위에 저항하는 ‘자동천공예술가(Auto-perforations-artisten(1985-1989))’를 결성하여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동독 말기의 시대적 불안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동독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예술그룹으로 평가된다. 그는 통독 이후 열린 카셀 도쿠멘타 9(1992)에 초대되었으며, 구체제와 통일 이후 독일의 정체성 구축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드러냈다. 냉전시대를 온몸으로 경험한 그의 작업은 정치적인 관심을 유지하되 은유와 반어를 통해 장난기 많고 해학적이며 시적인 특징을 담고 있다. 
 
대구미술관 1층 어미홀 난간에 설치된 길이 4미터 폭의 네온설치 ‘굿 갓(Good God)’은 가장 짧은 절제의 기도인 동시에 감탄사, 혹은 깊은 한숨 소리다. 레반도프스키는 신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통해 종교의 양면성을 오랫동안 탐구했는데, 그 연장선에서 보자면 GOOD의 변형된 단어에서 나온 GOD(신)은 ‘좋은 신은 어디에 있는가’ 란 질문으로 볼 수도 있고, 평온함이 무너졌을 때 신을 찾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도 있다. 이 설치는 지난 2019년 겨울, 독일 바이에른 주에 천년의 역사를 지닌 밤베르크 대성당의 돔에 대형으로 설치되어 도시의 밤을 비추었다. 
 
오쿠보 에이지 Eiji Okubo
 
오쿠보 에이지(Eiji Okubo, b. 1944~ )는 1세대 대지 미술가로 자연 속에서 ‘걷기’라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가장 깊은 뿌리를 찾고자 한다. 1980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국내 많은 작가들과 교류를 이어갔으며, 오랜 기간 그가 경험한 한국 역사와 문화는 작품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몇날 며칠을 걸어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순례자처럼 한국의 여러 지역의 자연을 걸었으며 또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박현기와 만남은 과거와 현재, 일본과 한국을 이어주는 특별한 인연이다. 
 
오쿠보의 설치 작품 대부분은 자연에서 얻은 것을 이용하고 전시가 끝나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식이다. 시간의 세례를 받아 자연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그의 작업은 사진이나 기록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는 이번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자주 거닐었던 대구미술관 주변의 포플러 나무를 떠올리며 작품을 상상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온 포플러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설치를 구상했지만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상황으로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걷기’의 원초적인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오쿠보의 <걷는 남자의 발>은 박현기의 건축적 설치작업 <A.R.T>와 나란히 어미홀 공간에 놓인다.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의 작품에서 ‘걷기’ 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맨발에 묻힌 흙이 지나간 오쿠보의 걷기에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이 깃들어있으며, 박현기의 건축적 공간에는 멈춤과 이동을 통해 신체 감각을 환기시키는 박현기식 농담이 들어 있다.
 
크베이 삼낭 Khvay Samnang
 
크베이 삼낭(Khvay Samnang, 1982~)은 캄보디아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할 동시대 작가 중 한명이다. 사진과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등을 폭넓게 아우르는 그의 작업은 캄보디아의 현실과 관련된 주제를 포함해 역사와 문화, 시사적인 문제에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제시한다. 몸은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매체로, 그는 섬세하고 때로 유머가 깃든 몸짓을 통해 사회적, 정치적인 메시지를 표현한다. 그는 몸이 인간이 가장 구체적으로 세상 속에 있는 방식임을 예술을 통해 증명한다. 
 
〈영혼의 길 Preah Kunlong (The way of the spirit)〉은 2017년 카셀 도쿠멘타의 초청작이다. 18분 길이의 영상은 캄보디아 아랑 계곡인 코콩 남서부 지역에 사는 총(Chong)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는 총 원주민이 땅과 물, 야생동물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는지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일 년 간 그곳을 오가며 공동체에 몸을 담았다. 그의 영상은 캄보디아의 환경 위기와 더불어 전통적으로 자연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원주민 공동체를 위협하는 정부의 토지정책이라는 현실의 렌즈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살펴본다. 이에 대해 작가는 꿈과 예감, 그리고 유머를 통해 이 어려운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믿는다고 말한다.  
 
 
히와 케이 Hiwa K
 
히와 케이(Hiwa K, 1975~)는 이라크 쿠르드족 출신으로, 난민으로서 겪는 이주의 경험과 식민 시대의 역사, 현대 정치사 등을 작업으로 담는다. 그는 1995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피난처를 찾아 걸어서 이란과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를 거쳐 독일에 정착했다. 정치적 망명으로 베를린에 거주하던 중 최근 고향인 쿠르디스탄으로 돌아가 산에서 머문 지 일 년이 되었다고 한다.
 
18분 길이의 영상 ‘모국어만큼이나 눈이 먼(Pre Image (Blind as the Mother Tongue)‘은  고향을 떠나 걸어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자신의 여정을 길가메시(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에 비유하여 이야기한다. 그는 오토바이 거울을 달아 만든 긴 막대를 콧등에 얹은 채 균형을 잡아가며 길을 걷는다. 자신의 몸과 감각의 연장이 되어 길잡이가 되어주는 막대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는 일종의 생존키트이다. 국경을 넘길 바라며 도착지를 알 수 없는 트럭에 숨어든 그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모국어로 말을 잇는다.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잃은 채 오직 소리에 의지해 도착한 미지의 세상은 피렌체다. 광장에 우뚝 서있는 조각상 앞에서 그는 묻는다. 그들은 왜 달리지 않고 서있기만 하는지를. 
이 영상은 난민이라는 신분을 넘어 인간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생을 찾아 길을 떠난 길가메시가 필멸의 운명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